[후암채집]후암동 골목탐방, 후암동덕후 '동네 한 바퀴'

이준형 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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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동 골목탐방

후암동덕후 '동네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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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암동은 동네답다. 동네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동네의 어감이 정다운 것은 분명하다. 옥탑이 있는 잘빠진 아파트도 좋지만 기와지붕, 양철 지붕, 그리고 화분이 가득한 초록색 방수페인트를 칠한 옥상있는 집 그리고 도로변과 마당의 가로수가 담벼락 위로 삐죽 나온 풍경을 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동네'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나는 우연히 골목탐방프로그램 소식을 들었다. 이번 주말 그녀와 함께 데이트하러 후암동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쌀쌀한 그 날 그녀와 후암동을 찾았다.





    이번 탐방을 통해 무심코 지났던 후암시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대부분의 재래시장은 시설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거쳐 아케이드와 점포가 정리정돈된 모습을 갖춘다. 그것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래시장 고유의 분위기가 사라져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후암시장은 뭔가 다른 것 같다. 변한 것은 확실한데 과거의 시간이 묻어 있다.
우리는 이번 탐방의 집합장소이자, 시장 2층에 위치한‘공간4283’에 모였다. 예전에는 시장 상인회에서 회의를 하기 위해 사용했던 공간이라고 한다. 따뜻한 조명이 시선을 끌었다. 지붕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새 조명을 달아 공간에 멋을 더했다. 지붕을 가만히 살펴보니, 상량문이 보인다. 한국전쟁 일주일 전에 이 공간이 지어졌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탐방을 주최한 후암시장 상인회 회장님의 인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탐방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었다. 이 날 후암동 골목탐방을 이끌어 갈 해설자로 소개된 김란기 선생님은 지금의 모습에 큰 영향을 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근대주거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후암시장을 구경하면서 답사가 시작되었다.




 후암동의 골목은 지루하지 않다. 시멘트 담벼락이 있는가 하면, 붉은 벽돌담도 있다. 담벼락보다 키가 큰 수목이 반겨주기도 하고 담에 붙어 있는 화분과 자투리공원이 걷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계단을 내려가기도 한다. 언덕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다보면 남산자락에 맞닿아 있는 길, 소월길로 진입할 수 있다. 이 길은 매력적이다. 집 사이사이로 언뜻 보이는 원경이 마치 동네모습을 담은 액자처럼 보인다. 길을 걷다 구멍가게를 발견했다. 90년대에 유행했던 옛날 뽑기기계를 손보는 아저씨가 계셨다.


 그 옆 굴다리를 내려가보았다. 1930년대 일본의 건설사, ‘신세이다이’가 주택지를 만들면서 둘러 쳐진 옹벽과 ‘새말교’굴다리는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동네를 분할했다. 마치 영화촬영지처럼 보이는 이 동네는 주민들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언제 쓴 걸까? 윗동네에 벽이 갈라진 집은 일본어로 뭔가 쓰여 있었다. 일본어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소월길을 따라 굽어 걸어오면, 해방촌에 들어서게 된다. 해방촌 오거리를 지나 꼭꼭 숨어있는 이곳은 해방촌 신흥시장. 본래 1970~80년대 니트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신흥시장은 니트산업이 쇠락하면서 자리를 지키던 상인들도 하나 둘 시장을 떠나게 되었다. 상인들이 떠나고 남은 점포에 젊은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재봉기 소리로 떠들썩했던 골목이 젊은 상인들의 열정섞인 목소리로 채워지면서 신흥시장도 제2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터줏대감 상인들의 가게와 이제 막 들어온 예술가, 활동가, 청년장사꾼의 가게가 공존하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곳이다.
후암동은 후암로와 108계단을 기준으로 언덕동네와 평지동네로 나뉘는데, 언덕동네와 평지동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언덕동네는 남산과 도서관이 가까운 차분한 느낌의 동네이다. 그래서 사색하고 싶은 날 홀로 산책하기 좋은 동네이다. 평지동네는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어 아기자기한 데이트코스가 많다. 화창한 주말, 그와 그녀가 함께 데이트하고 싶은 동네이다.
108계단으로 내려와서 앞서 아랫동네의 보지 못한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주막은 아니었을지, 일본의 주점거리를 연상케하는 지붕구조가 특이하다. 그런데 아랫도리가 없다. 그저 기둥이 버틸 뿐, 그렇게 반개방형 구조로 주차장 노릇을 한다. 이런 허름한 주택이 지금까지 있는가하면, 높은 담벼락과 경사가 점점 올라가는 지대에 놓여있는 저택이 보인다. 백 년 전의 것들을 재구성해 앤틱크한 멋이 있는 곳이다. 측면으로 기웃거리면 저택의 정원을 조금이나마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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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예정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겨우 후암동의 반절 정도 본 건데, 아쉬웠다. 공간4283으로 돌아온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다녀본 소감과 후암동이란 동네에 대해 각자의 느낌을 공유했다. 40여 명이 참여한 이번 골목탐방은 많은 사람들이 후암동에 대해 관심 있다는 것에서도 놀랐지만 사람마다 관심을 가지는 이유와 사연이 더욱 재미있다. 같이 나온 모녀는 색다른 데이트를 위해 후암동을 선택했고, 후암동의 향수로 찾아온 어르신도 있었다. 도시화된 삶 속에서 아직 ‘동네’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고 옛 추억을 꺼내고픈 마음에 찾아온 사람도 있다. 후암동은 ‘그냥’동네다. 그런데 요즈음 ‘그냥’동네를 찾아볼 수 있을까? 그게 더 심심하지 않고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마 그녀와 함께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 이번 호에서 소개한 시간채집은 후암시장 상인회에서 주최한 후암동 골목탐방 <동네한바퀴>에 참여하여 이루어진 결과물로 안내 해설에 <살맛나는 골목세상>의 김란기 선생님이 진행해 주셨습니다. 후암동의 역사적 내용은 김란기선생님의 자료를 근거로 두었으며, 도시공감의 개인적 감상으로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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